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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가 이동근
글쓴이 mia25**
등록일 2019-11-07

그들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사진가 이동근과 지나가는 것들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모든 존재는 옛것, 사라질 것들로 변한다. 사람뿐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공간과 도시도 그렇다. 사진가 이동근은 한 해 앞을 알 수 없는 사람부터 몇 년이고 변하지 않을 듯한 도시의 이면까지, 모든 존재에서 유한함과 고독을 본다. 그 앞에서 카메라를 든다. 사진가 이동근을 만난 날, 그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힘으로 ‘기록의 힘’을 강조했다. 변하는 존재를 담겠다는 그의 생각은 카메라를 든 이후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역설적이었다.

 

그가 지나온 시간

이동근 사진가는 범일동 범내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자랐다. 당시 범일동의 조방 앞1)에는 부산시민회관이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시민회관을 지나가다가 전시가 열리면 들어가 작품을 보는 일이 그의 소일거리였다. 중학교 2학년 하루는 평소처럼 들른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사진 한 장을 보았다. 플라타너스를 뒤로하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개울에, 안개 사이로 자전거가 지나가는 전형적인 ‘살롱 사진’이었다. 작품 이름 「신월리의 아침」을 그는 지금도 기억한다. 눈앞에 드리워진 광경을 잊지 못했던 소년 이동근은 그길로 어머니를 졸라 중앙시장의 깡통시장으로 향했다. 보따리상에게서 올림푸스펜 하프카메라(OLYMPUS PEN EE-3)를 샀다. 그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는 줄곧 사진가의 꿈을 품었다. 한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평범한 직장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30대가 넘어서도 하고 싶었던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이동근 사진가는 본격적으로 경성대학교 멀티미디어대학원 사진학과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하며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줄곧 사회의 시야에 사라진 존재를 주목하며 셔터를 누른 그는 오래지 않아 2012년 제5회 KY&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 최종작가, 제10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부분에 선정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이동근 사진가의 작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그가 지금까지 뿌리내려 살아온 부산에서 사라지는 공간을 기록하는 일이다. 다른 한 가지는 사람, 그중에서도 소수자에 관한 작업이다. 무엇을 향해 카메라를 들고 찍어 남기든 그는 ‘환기’喚起라는 뚜렷한 초점을 둔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활, 군생활까지 부산에서 보냈던 이동근 사진가의 작업에서는 부산, 그중에서도 생활공간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전시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중 하나인 좌천아파트를 촬영한 ‘모던시티 좌천아파트’를 들 수 있다. 매일같이 좌천아파트를 지나다녔던 중,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와 ‘산복도로 다시보기’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 이동근 사진가는 30년 만에 올라가 본 좌천아파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칠이 떨어지고 시설이 노후했을 뿐 건물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낡은 생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동근 사진가는 좌천아파트의 주민들과 같이 지내면서 그가 받았던 과거와 현재의 감상을 멈춘 시간에 씌웠다. 올해 3월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린 개점 10주년 기념전 ‘Memories of BUSAN’에서 다시금 선보인 시리즈 ‘흐르는 길’도 옛 주거공간이 남은 그의 고향 범일동과 중, 고등학교가 있던 매축지를 조명한다. 모세혈관처럼 비좁으면서도 인적이 드물어 서늘한 골목길, 옹기종기 붙은 푸른 지붕과 낡은 가로등이 만들어내는 야경이 사진에 담겼다. 이동근 사진가에게 공간은 작업에 대한 태도다. 그는 옛 기억과 경험이 있는 장소에서 촬영하며 낯설게 다가온 실체를 기록하고 비교한다. 그렇게 이동근 사진가는 잊힌 일상이 되어버린 배경을 환기한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것들을 멈춰 세우고, 떼어내어 전혀 다른 공간에 전시함으로써 전혀 다른 이미지로 공간을 조명한다. 지켜야 할 것들, 간직해야 할 곳들, 수많은 소중한 장소들을 잊고 계속 살아가는 시민은 그가 정지시킨 시간 앞에서 고층 빌딩과 신축 건물에 가려졌던 일상을 새롭게 바라본다.

 

“우리는 부산의 시간을 완전히 멈춰 세울 순 없습니다. 그나마 사진이라는 매체가 조금이나마 기억의 작은 조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작업합니다. 사진뿐 아니라 예술 전체가 마찬가지일 겁니다. ‘인간의 유한한 생명력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예술이 태어났다’는 말도 있지요. 사진은 지나갔던 시간을 품고, 과거를 회상하는 일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이동근 사진가는 이따금 부산을 넘어 강원도로 향하며 사라지는 공간, 상기해야 할 공간으로서의 촬영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 분단된 국경을 앞에 둔 풍경과 삶은 대중이 인식하는 그것과 차이가 있기에 그는 국가의 경계 근방에서 생겨나는 사건을 보고 찍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분단국가의 현실이 우리 삶 속에 녹아 있는데도 사람들은 크게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대중의 인식에서 사라지는 풍경이다. 이동근 사진가는 계속해서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것들을 찾아 촬영하고 있다.

 

사라지는 사람 이야기

사람을 향한 작업도 그렇다. 이동근 사진가의 카메라는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보다는 소수자에게로 향하며, 이들의 존재를 환기하려는 목적이 담겨있다. 그를 2012년 제5회 KY&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 최종작가에 올린 ‘초청장[An Invitation]’ 시리즈 또한 제목에서부터 메시지가 드러난다. 작품 속 피사체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온 결혼 이주 여성이다. 이들에게 결혼은 충분한 시간과 마음이 주어지는 의식이 아니다. 그들은 고작 20분 내외의 짧은 대면 안에 평생 자신의 삶을 바꿀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으로 향하는 초청장을 쥔 채 비행기에 몸을 싣는 신부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다른 빛을 발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살다가 한류를 좇아 한국 땅을 밟은 사람부터 흙으로 빚은 움막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꾼 사람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그들 사이에 섞여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들 모두를 ‘결혼 이주 여성’이라는 한 단어 속에 격리시키며 대수롭지 않게 잊곤 한다. 사람을 보는 것 또한 눈의 일이기에, 일상에서 부산을 바라보는 시각과 맥락을 같이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기사로 소수자의 이야기가 꾸준히 흘러가지만, 소수자의 삶이 일상이 된 나머지 다수의 사람은 소수자를 배제한 채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카메라로 그들을 바라보는 순간 그들은 전혀 다른 존재감을 발산한다. 이런 부분이 이동근 사진가가 소수자를 주목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한 장 속 사진에는 주시하는 대상을 명확하게 밝힌다. 카메라와 그 카메라가 본 시선을 드러내는 사진을 통해 사진가와 관람객은 스쳐 지났던 사람을 색다른 시선으로 꼼꼼히 살필 수 있다.

이동근 사진가가 들여다보는 소수자는 사회 전역에 퍼진 디아스포라Diaspora다. 본래 ‘디아스포라’는 나라를 잃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일컬었지만, 최근에는 환경,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문제로 인해 나라를 떠나 떠도는 사람을 아우르는 용어로 확장됐다. 그가 칭하는 디아스포라는 피난뿐 아니라 결혼 이주, 탈북 등 여러 가지 삶의 이유로 국내 사회에서 버티는 사람이다. 한편, 국내에서 태어났지만, 해외로 나가야 했던 입양아도 그의 시선에서 난민이다. 이동근 사진가는 일상에서 평소 보고 체감할 수 있는 삶과 전혀 다른 노선을 걷는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상기하기 위해 사진에 그들을 담는다.

 

초청장, 보티투 가족사진, 베트남 건터, 2011

 

 

‘초청장’을 비롯해 이동근 사진가가 하나의 주제로 인물을 촬영하는 작업은 7~8년이 소요된다. 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은 촬영 작업과 심사과정에만 6개월이 걸렸다. 이동근 사진가는 촬영 과정에서 충분히 “수상 이상으로 작업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장시간에 걸친 촬영과 대화는 사진가와 피사체라는 관계를 부수고, 소외된 사람과의 유대관계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촬영 작업이 가능한 결혼 이주 여성 관련 단체를 수소문하다가 자원봉사센터의 외국인 주부 한글 교실과 연락이 닿았어요. 촬영 동의를 얻고 수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매주 한글 교실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들과 함께 책상을 나르거나 힘쓰는 일을 돕고, 행사가 있으면 사진을 찍어주고, 피사체가 섭외되면 촬영을 진행했어요. 나중에는 정식 선생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학교의 청일점 선생으로 다시 5년을 일하면서 ‘초청장’의 촬영 작업을 마저 진행했습니다. 이때 만난 사람들 몇과는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요.”

 

여전히 그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찍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아리랑 예술단’이라는 제목으로 탈북자를 조명한 미발표 작업을 새로이 발표할 계획이다. 생활고를 버티지 못해 탈북을 시도하다가 그 길로 잡혀 팔려 갔던 사람들, 우여곡절 끝에 남한으로 흘러들어와 외면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그는 이번에도 작품으로 담을 예정이다.

 

 

아리랑예술단, 철마한우축제 무대 뒤, 2015

 

 

따뜻한 렌즈

이동근 사진가가 소수자를 찍는 또 다른 이유는 ‘변화’다. 셔터를 드는 순간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들기까지의 과정에서 이동근 사진가는 끊임없이 자신이 어떤 태도로 사람을 만나야 하고 생각해야 하는지 배워간다.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나는 바뀔 수 있다’고요.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세상을 보는 저부터 소수자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요. 자각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우리 전체의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소수자가 될 가능성을 항상 품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그들이 실질적으로 분리된 대상이 아니지요.”

 

풍경이나 사물과 달리 사람이 대상일 경우에는 윤리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동근 사진가는 렌즈 안에 담긴 사람을 물적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단지 작업의 목적으로 사람을 세우지 않기 위해 해야 할 것을 늘 고민한다.

 

“예술적 주제 표현의 도구로서 사진을 찍는 사진가가 있고,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세상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해 촬영하는 사진가가 있습니다. 저는 후자이기에, 세상을 보는 태도와 시각에 따라 작업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진가의 마음이 움직이는 곳에 카메라의 초점이 가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람을 찍다 보면 피사체에 대한 사진가의 태도가 이미지에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태도가 작가의 세계를 결정짓는 거지요.”

 

이동근 사진가는 10년 후 ‘좋은 사진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좋은 사진가란 유명한 사진가가 아니라,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사진가다. 더불어 살아갈 때 빛나는 세상이지만,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외면당한다. 그들의 삶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이동근 사진가는 모든 사람과 공간이 잊히지 않고 행복한 순간을 살아가기를, 그런 세상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사진가가 되기를 바란다. 그는 “사진가에게 있어 ‘사진’이란 세상을 보는 눈”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보는 그의 눈이 언제까지나 온기를 담으리라 믿는다. 

 

 

글_김지희(월간 예술부산 기자) / 편집_포토마 객원기자 이민정(공학박사, 월간 예술부산 편집장)

월간 예술부산 2019년 6월호 예술가의 방 코너 수록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