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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로운 작업 이정록 작가 아이슬란드
글쓴이 SoonL**
등록일 2020-02-14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매번 감회가 남다르지만, 이번 아이슬란드 작업은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 30년 간 국내에서 해온 모든 작업들은 나만의 사적 성소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나를 끌어당기는 장소를 찾고, 그 장소에서 명상을 통해 깊은 상태로 침잠했다. 그리고 맑고 고요한 상태에서 미세한 떨림을 느끼며 공간의 에너지와 공명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터키의 카파도키아, 스페인의 산티아고 등과 같은 해외의 작업 장소들은 대부분 공적 성소였다. 오랜 시간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혹은 그 영감으로 만들어진 종교적 장소들에서 나는 인류가 오랫동안 가져온 영적 세계에 대한 열망과 신성 추구의 경험을 공유했다. 아이슬란드로 출발할 당시 나는 사적 성소의 연장선상에 서있었다. 마음이 닿는 장소에 머물며 공간의 에너지와 깊은 교감을 나누게 될 거라는 어렴풋한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완전히 백지 상태가 되었다. 아이슬란드는 지금껏 내가 경험한 곳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곳에는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에너지의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표면 아래에서 들끓는 용암의 뜨거움 입김과 지표면 위 거대한 빙하가 내뿜는 차가운 기운이 하루에도 수차례 포효하듯 뒤엉켰다. 그것은 음과 양의 조화 이전의 상태였다. 마치 지구에서 생명이 막 태동하던 과거 어느 시점으로 빨려 들어간 느낌이었다. 거기에 고요한 명상과 침잠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나는 장소와의 내밀한 공명이 아니라 휘몰아쳐 내 영혼까지 뒤흔드는 에너지의 음성을 받아내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선물 같은 장소들이 있었다. 내가 설치작업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마음속의 선경들이었다. 저절로 Anima(영혼, 정신을 뜻하는 라틴어)가 떠올랐다. 모든 장소, 동물, 식물, 자연현상이 의식과 감정을 지니며 인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애니미즘의 믿음이 우파니샤드, 물활론, 범심론을 상기시키며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애니미즘이 왜 모든 종교의 기원이며 근본원리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간 나의 모든 작업에는 주체로서의 내가 있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서 나는 자주 옅어지고 투명해졌다. 아이슬란드에서 작업하는 동안 나는 내내 열에 들떠 있었고, 거대한 문 앞에 서 있는 기분으로 가슴이 요동쳤다. 아이슬란드를 통해 그 문을 열 수 있을까? 그 문 너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슬란드 작업도, 나의 모험도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