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국내 사진전

이상일 Mementomori





1. 전시개요
<스페이스 22>는 2022년 5월 4일부터 31일까지 이상일의 초기작 《메멘토모리》를 소개한다. 1987년 온산면 당월리에 공단이 조성되자 주민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상받지 못하거나 턱없이 부족한 보상 때문에 이주가 불가능했던 잔류 주민들은 오염된 환경 속에서 여전히 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온산 주변에서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온산병’이 발병했다는 소문이 무성히 나돌았다. 실제로 거주민들은 ‘온산병’의 증세를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하고 있던 이상일은 자연스럽게 그 마을에 스며들었다. 1990년부터 시작된 그의 ‘메멘토모리’ 시리즈는 이렇게 완성되었다.
이 작업은 온산면 당월리 마을의 마지막 모습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마지막 생활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메멘토모리》는 한국 사진의 역사 속에서 기록 사진의 확장성에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사진 작업은 단순한 기록의 차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고백했듯이 그의 관심은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와 더불어 자기 삶의 경험 속에서 비롯한, 존재의 상실에 관한 지속적인 탐구였다. 그래서 그의 작업 《망월동》이나 《온산공단》 그리고 《으므니》는 보편적 표상으로의 기록을 넘어선다.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작가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 만들어낸 흔적이자 타자화된 존재에 대한 경외이기도 하다.
<스페이스 22>는 《메멘토모리》가 지닌, 디지털 사진이 일반화된 시대를 관통하며 점점 개념화되어가는 동시대의 사진과는 다른 지점을 목도하며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가 지닌 무력함을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 작가소개
이상일 李尙一
1956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순수 사진을, 부산대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하였다. 1992년 <망월동>, 1994년 <온산공단>, 1995년 <으므니>, 2009년 <오온>을 발표하였으며, 2000년 휴스턴포토 페스트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가하였다.
2000광주비엔날레 최우수 기획전상, 2009년 동강 사진상, 2011년 이나노부오상을 수상하였으며, 경일대 사진학과 교수와 고은사진 미술관 관장을 역임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 동경도사진미술관 등에 작품이 영구 소장 되었다.
현재는 양산의 ‘이상일사진관’에서 사진작업과 영화사 ‘후앤유’ 아트디렉트, 그리고 비제도권사진교육에 힘쓰고 있다.

3. 작가노트
두 번째 사진에 관한 짧은 생각나의 사진 작업은 세상과 만나는 일과 매체에 대한 실험을 동시에 탐색하는 일이다.
우리는 세계를 만날 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대해 자칫 혼동하기도 한다.
보지 않고는 보임이 없고, 보이는 것이 없이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다는 것을 이용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존재’는 동시에 ‘보이는 것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게 된다.
작업 《메멘토모리》는 온산공단 이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찍은 사진들이지만 나의 주체적 시선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장소의 존재론적 실체가 찍혀져 은폐된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은 어둡고 슬픈 삶의 파편들이며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된 제도 폭력의 뒷모습이기도 하다.

4. 전시서문(정주하, 신지은)
이상일 사진 <메멘토모리>에 대하여
정주하 _ 사진가, 백제예술대학교 교수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_나바호 인디언의 메멘토 모리 사진은 내가 그 때 그 앞에 있었다는 행위의 증명이다.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명징하게 증명해내는 매체는 그래서 사진뿐이다. 카메라가 대상을 촬영하는 순간은 작가도 절대 개입할 수 없는 진공의 상태이기도 려니와, 작가의 의지란, 그 대상 앞에 가 서겠다는 결정으로 이미 종결되고 만다. 아무리 셔터스피드가 길다고 하더라도 빛으로 대상을 재각(再刻)하고 있는 사이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후, 사진에 인입되는 작가의 관점은 결정된 판단 위에 모양을 입히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사진이란 어떤 대상을 왜 그렇게 복제해 내었느냐에 의미가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대상 앞으로 다가갔느냐가 더 우선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종종 사진을 판단하면서 객관과 주관의 의미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1950년대의 일이지만, 독일의 오토 슈타이너트(Otto Steinert, 1915-1978)가 주창한 주관주의 사진(Subjective Fotografie)이 그것인데, 사실 이는 사진의 본질/기술 적인 근간에 바탕을 둔 주장이라기보다 다분히 의도적인 관심으로 행해진 것에 불과하다. 사진이 발생되는 순간에 주관은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다.
그러니까 사진이란 포토그래피(photography)란 말 그대로 빛으로 대상을 다시 각인하는 일인 것이다.
대상이 사진으로 만들어지는 그 촬영-순간의 셔터스피드가 길거나 혹은 짧아서 생기는 상의 변이(變異)는 만들어진 후에 인간이 다시 인지하는 동안에 얻어지는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즉 착각인 것이다. 사진은, 대상이 카메라에 의해 찍혀지기 이전에 작가가 그 대상이 가진 사회적 의미의 자장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작가와 대상과의 동침은 매우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며, 그 사회적 자장의 터울을 벗어나고자 하는 배신(背身)의 행위가 곧 작가의 의도이자 주관적인 판단이 될 것이다.
이상일이 이번에 보이는 작업 <메멘토모리 M ementomori>는 1990년부터 2000년 사이 온산 당월리에서 촬영한 것이다. 흔히 온산공단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석유화학 공장이 113개나 입주해 있는 명실 상부한 국가산업단지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는 주민이 없다. 오천여명의 공장직원들이 오가며 일하는곳일 뿐이다. 사진가 이상일은 이곳이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기 바로 직전 마지막 마을의 모습과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대상으로 작업한 것이다. 그가 스스로 고백하는 것처럼 작업을 시작하던 초입 당시 이곳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사진 공부 덕분에 작업하는 대상(피사체)의 사회적 인식에 대한 각성은 이미 있었지만, 꼭 온산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주변의 권유와다양한 사진제작 방식에 대한 실험적인 학습의 욕구가 갈급했던 그 시절의 호기와, 잠재되어 있던 낮은곳에 대한 뜻 모를 애정이 온산작업의 시발이었을 터이다.
이상일은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미 하고 있던 광주 망월동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언듯은 전혀 다른관점의 대상일 터이다. 그러나 온산공단과 망월묘지의 횡적인 관계는 멀 수 있으나, 시대를 관통하며 꿰뚫어 온 아픔의 역사는 같은 과녁을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에는 경상도의, 다른 한편에는 전라도의 피가 묻어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작은 땅을 그동안 좌, 우로 흔들어 놓았던 정치 사회적 역사의 무게가 가리키는 그 지점은 해원(解寃)일 터이다. 당시에 작가가 의식하지 않았겠지만, 이번 작업 메멘토모리의 의미가 죽음이며 망월동의 의미 또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의 사진에서도 그렇다. 이번 작업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드러난다. 하나는 다양한 기술적 접근의 혼융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 속으로 “스며들기”다. 어릴적 채 채우지 못했던 정규 학습에 대한 욕구와 군인으로서 광주에 투입되었던 역사의 무게에 대한 반응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작업 형식에 천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이처럼 한 가지 주제의 작업에 다양한 사진적인 기술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가 사용한 정방형 프레임은 전통적으로 화면구성에 있어서 중앙 집중적인 효과를 누린다. 미국의 여류사진가 다이안 아버스(Diane A rbus, 1923~1971, 미국)가 같은 포맷의 카메라로 화면 가득 인물을 촬영한 이유는, 대상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제시하/드러내>고자 하는 뜻이 강했기 때문이다.[사진 3] 뿐만 아니라, 이 정방형의 포맷은 그 사각의틀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사물의 사회적 기호읽기가 원형으로 공전하는 경향이 있다. 이미지의 틀 자체가 바라보는 관자의 시선을 밖으로 분산시키지 않고, 그 사각 안에서 맴돌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좌에서 우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되는 시선의 너울은 화면의 중심을 기점으로 구심되는 경향도 있다. 따라서 많은 사진가들이 정방형의 프레임을 사용할 때는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 시키려는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상일은 이 정방형프레임의 카메라로 마치 35mm 카메라를 사용하듯 화면을 매우 넓고 중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1
[사진 4]를 보면, 인물들이 삼각의 구성으로 배치되어있다. 전면의 인물은 그저 찍힌 듯한 모습이고, 화면 중반 오른쪽에 아이 업은 아낙은 그 뒤로 몇 명의 아이들과 중첩 되어 있으며, 그 길 저쪽으로부터는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다. 이러한 중층적이고 화면을 깊게 설정하는 방식은 전통적으로 35mm카메라를 다루는 작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사진을 보는 관자들은 앞쪽의 전경으로부터 골목길이 끝나는 원경에 이르기까지 지루하지 않게 훑어가며 사진을 반복적으로 읽어낼 수 있게 된다.
#2
[사진 5]를 보면, 화면 오른쪽 하단에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은 중앙에 있는 전봇대를 중심으로 그 왼편에 있는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이에게 시선을 전달한다. 하늘에 드리워진 번거로운 전기 줄의 모습도 이러한 작가의 화면 설정 때문에 각기 두 아이의 동선을 복잡하게 상징하는 것처럼 무리 없다. 게다가 이곳이 이미 주인이 떠나버린 빈 가게가 있는 거리라는 것도 그리고 주인 없는 가게의 열린 문안쪽에 잔뜩 쌓여있는 연탄더미의 의아함도 모두 설정인 듯한 착각을 선사한다.
#3
[사진 6]을 보면, 소주잔을 왼손에 쥔 채 앞에 앉은 지인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의 할아버지 사진은 그러나 화면 왼쪽 중앙에서 집 뒤로 걸어가고 있는 어떤 여인의 모습을 중재할 뿐이다. 초점은 할아버지의 모습에 맞춰있으나 셔터를 누르기 직전 앵글의 각도는 여인이 걷고 있는 곳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며,화면의 중심에는 구멍가게의 식료품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배추와 무와 양파의 조합이 어떤 안주를 만들어 낼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화각의 설정으로 사용한 플레쉬의 효과는 아주 약하게 전달되면서 상황을 오히려 매우 낯설게 꾸민다.
#4
[사진 7]을 보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사진도 있다. 지금은 전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겠으나, 1990년대 까지는 온산 당월리 앞 바다에서 해녀의 자맥질이 가능했던 모양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화면 좌측 하단부에 해녀의 모습이 있고, 배경으로는 하늘과 바다의 톤이 거의 비슷하게 표현되어 음울한 색조를 이루고 있다. 멀리 수평선 쪽으로 무엇인가 공단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을 주기는 하지만 정작 보이는 것은 없다. 단지 미래의 이 바다에서는 다시는 해녀의 자맥질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부드러운 바다의 물결과 함께 다가온다. 왼편에는 막 해산물을 채취해 올라온 해녀의 모습과 그녀가 물속으로부터 끌고 올라온 공기의 잔해는 둥근 파문을 만들어 먼 바다로 보내고 그리고 오른쪽 화면 가득히는 불안한 미래의 징후가 가득하게 설정되어있음을 본다. 한 화면에 상충하는 두 개의 세계가 비슷한 톤으로 절묘하게 표현되어있다.
이와 같은 화면의 넓은 활용은 작가가 다이안 아버스와는 달리 광각렌즈를 사용하였기에 가능할 일이었을 것이며, 작업의 또 다른 접근방식으로 동시에 사용하는 플레쉬의 효과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노린 듯 보인다. 일광 하에서 플레쉬를 사용할 때는 배경의 처리가 단순해지면서 가까이에서 빛을 받은 사물만 도드라지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 이상일의 작업은 대상의 배치가 화면 중앙에 집중된 것이아니라 넓게 확산되어 있기에 이러한 플레쉬에 의한 톤의 도드라짐이 사뭇 부드럽게 보인다.
이처럼 이상일의 이번 작업은 카메라 포맷부터 앵글, 각도, 대상과의 거리감, 플레쉬, 노출의 이중적용, 빠른 셔터스피드와 스냅슈팅 등 하나의 작업 안에 예닐곱 가지의 촬영기술을 복합 중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며 그렇게 작업한 의도가 학습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사전에 기획된 작업의 기술적 접근이 아니라 당시 학생신분으로서 여러 가지 사진 표현방식에 대한 공부차원이었다는 것이다. 온전히 믿기가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그의 당시 생물 나이가 일반 학생들보다 월등히 많았고, 오랜 군대생활에서 얻은 살아남기 위한 기술습득에 익숙해져있는 상태를 고려한다면 나름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은, 아니 의문이 아니라 나의 직감적 판단에의하면 작가가 이처럼 다중적인 기술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타고난 생존본능에 있는 듯이 보인다. 당시 한국에 막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유럽 사진 중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1924~2019, 스위스)나 윌리엄 클라인 (W illiam Klein, 1928~, 미국) 혹은 모리야마 다이도(M oriyama Daido, 1938~, 일본) 등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충격적인 화면 구성과 거친 입자와 앵글 그리고 눈에서 떨어져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단계쯤을 이용한 계획된 우연을 모색하는 방식에 대한 작가 나름의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진이 아직도 서구 사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부분의 근간에는 몇몇 위대한 서양 사진가들의 제작 방식을 읽고 이해하면서도 채 극복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 글에서 조차 여전히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근거삼아 비유의 기초를 삼아야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다. 1990년대는 이제 막 서양에서 사진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유학 1세대들이 있었다. 그들이 자의든 타의적이든 서양사진의 일면을 한국사진계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그에 대한 영향이 상당한 지경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이상일은 그러한 한국 사진교육계의 탁한 세례를 받으면서 성장한 대표적인 사진가다. 그를 가르쳤던 대학의 선생조차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당시 이 땅의 사진학도들 대부분은이 환경에 노출되었고, 스스로 환영하였고, 답습하려 애쓰기도 하였다. 학습의 궁극적 목적이 답습에있는 것이 아니라, 극복에 있는 것임을 당시 몇몇이 외치기도 했지만 답습을 향한 도도한 물결을 막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그 즈음 불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지칭하는 사회적 현상 중 가장 뚜렷한 것이 경계에 대한 해체 의식이었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지점이 과거로부터 뚜렷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시기에 들어서면 그 경계가 느슨해지고 나아가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는 현상 말이다. 그러니 동양과 서양의 가치 혹은 사진과 회화와의 경계가 무의미해진다고 믿는 작가들은 이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환영에 사로잡힐 만도 했다. 나아가 과거의 것을 그대로 차용해서 사용하는 상호텍스트적인 현상은 당시 서양의 것을 가져다 거름 없이차용하는 작가들에게 나름의 위안을 주기도 한 듯싶다. 이러한 당시 사진교육계의 분위기에서 이상일은 본능을 발휘하여 읽어낸 서양사진의 장점들을 자신의 작업에 모두 시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의 흐름 속에서 성장한 작가는 다행이도 당시 세례 받은 영향으로부터 ‘자신의/사진의’ 근본을 찾아가려는 의식이 있었던 듯하다. 그가 비슷한 시기에 작업한 <어머니의 땅> 작업은 시골 동네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의 상반신 포트레이트가 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젖통을 드러낸 으무니’들의 사진이다. [사진 8]
이 <어머니의 땅> 작업시리즈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다. 평범한 그러나 긴 시간 고단한 삶에 맞서 생명을 일구어 온 시골 아낙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그 금기의 몸짓이 심한 편인데, 작가는 이것을 넘어 그들의 윗도리를 벗기고(?) 생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젖 을 드러내도록 했다. 형식적으로 보면, 리처드 아베든 (Richard A vedon,1923~2004, 미국)의 서부인(American W est)의 작업을 연상하게 하지만, 이상일의 작업에서 주목해야하는 것은 생명의 문제다. 이미 진행하고 있던, <망월동> 작업과 <메멘토모리> 작업이 죽음에 대한 작업이라면, <어머니의 땅>작업은 생명에 대한 작업이다. 몸빼 바지를 입은 아낙의 주름지고 처진 젖통과 얼굴의 모습은 이 땅의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어머니들의 전형이다. 리처드 아베든이 자신의 아버지가 죽어가는 장면을 시리즈로 작업했다면, 이상일은 이 땅에 생명을 주유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정면으로 작업한 것이다. 이처럼 죽음과 생명력에 관한 관찰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작가가 <메멘토모리> 작업에서 보인 두 번째 핵심인 ‘스며들기’는 그래서 의미 있는 접근방식이다. 그는 철저하게 카메라 뒤에서 촬영하는 대상의 사회적 지위나 혹은 처해진 상황에는 감성적 관여를 하지 않았다. 자신이 드러내는 온산 당월리 마지막 주민들이 처한 모습이 얼마나 힘겨운 시대의 한 단면을 지 나고 있는지에 대한 연민의 흔적이 전혀 없다. 작가는 오히려 그들 속으로 파고들어 마치 망나니의 칼 처럼 번쩍이는 카메라/플레쉬 셔터로 삶의 단면을 저며서 동결시켰다. 주민들 속으로 스며들어가 그들 의 가시적 경계감을 완전히 무너뜨려 자유롭게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으나, 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이 나 고난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지금의 일상을 즐기며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담담한 드러내기를 우선한 듯이 보인다. 그곳 학교 운동장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운동회를 찍은 사진에서도 이들이 곧 이곳을 떠나 타지로 떠날 것이라는 불안의 흔적은 없다. 태극기가 조기처럼 계양된 모습에서 흘낏 그런 조짐을 느낄 수도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옆으로 매달린 만국기의 모습이나, 어 머니와 딸들이 알 수 없는 몸짓을 하며 놀이를 하는 모습과 병치되면서 사라진다. [사진 9] 뿐만 아니라, 아기를 업은 젊은 아낙이 카메라를 쥔 채 무엇을 찍을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이나, 할머니 손가방을 탐하는 등에 업힌 어린애의 천진한 얼굴 어디에도 이주에 대한 흔적은 없다. 그저 배경으로의 하늘이 정상보다 어둡게 처리됨으로서 음울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 말고는 없다. [사진 10] 작가 이상일이 이러한 방식의 작업을 통해 종국적으로 가 닿으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자신만의 문체(에크리튀르 écriture,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1915~1980, 프랑스)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작가에게 있어서 자신만의 작업방식을 갖는 다는 것은 작가의 몸과 지나온 시간과 습득한 기술이 자동적으로 외현(外現)되는 것을 뜻하기도 할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의 이번 작업 <메멘토모리>에는 사진 이외의 다른 과녁이 없다. 우리는 지금 ‘그의 사진’을 본다.











2022-05-04 ~ 2022-06-10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390번지 미진프라자빌딩 22층
스페이스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