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국내 사진전

대구문화예술회관 양성철 회고전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원로 사진작가 양성철의 회고전을 개최한다. 전시는 오는 7월 28일부터 8월 1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1-5전시실에서 열린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사진작가 양성철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을 7월 28일부터 8월 1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1~5전시실에서 개최한다.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상경대학과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양성철은 1979년 대구 매일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진 이래 최근까지 40여 년간 꾸준히 활동을 이어 오고 있는 대구 사진계의 대표적인 원로 작가다.

작가는 16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 및 사진집 발간 등을 통해 작품을 발표해 온 사진작가인 동시에 대구산업정보대학 사진영상과 교수로 20년 가까이 재직하면서 많은 후학들을 길러 낸 교육자이자 사진 연구자이기도 하다. 또한 사진연구소와 사진출판사의 대표, 영남사진학회 회장, 사진 월간지 『포토하우스』의 편집주간, 대구사진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사진계의 여러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 사진 문화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50여 년 작가 생활을 회고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1970년대~1990년대 초의 잔상(殘像) 연작,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의 불이(不二/不異) 연작, 2000년 이후의 인(人)+물(物) 연작, 최근 몇 년간 집중하고 있는 Red/Blue 연작 등 작가의 작품 활동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는 전시가 될 예정이다. 

1~4전시실에서 소개되는 100여 점의 사진 작품과 더불어 5전시실에서는 과거 전시들의 팸플릿, 포스터를 비롯해 사진집, 각종 아카이브 자료 등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작가의 40여 년 사진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정리, 재조명한다. 

양성철은 사진가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70~1980년대 대구에서 현대사진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어 나간 이래 현재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험하면서 자신의 사진예술 세계를 공고히 구축해 오고 있다. 

대구 현대 사진사의 전개 과정에서 쉼 없이 활동을 이어 오며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사진가의 작품세계를 회고하는 이번 전시가 작가 개인의 예술은 물론 대구 현대사진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양성철의 사진 미학: 목언(目言)의 잔상과 불이(不二)

남인숙(미술평론, 미학박사)


1. 양성철과 사진

 양성철(1947~) 은 중고등학교를 모두 경대사대부설중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상학과를 졸업하고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양성철은 신일전문대학 사진영상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대구사진의 지도(地圖)를 그려나간 인물로 사진의 융성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여타의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사진에 있어서도 대구는 여느 지역과 달리 두드러지는 자산이 있다. 일본에서 사진을 배워 활동한 최계복이나 사실주의를 지향한 구왕삼의 명성, 최초 사진학교를 운영한 안월산의 월산예술학원 등 그 정통성이 남다르다. 신문물에 대한 수용과 탐구의 태도를 보여주는 이러한 대구사진의 정통성이 뒷받침되어 결국 국제적인 대구사진비엔날레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대구는 한국에서 최초로 국제사진살롱(1963년, 대구사우회 주관)이 개최된 곳으로, 국제비엔날레가 이를 계승한 것이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국제사진비엔날레를 현실화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 양성철이다. 국제사진비엔날레는 2006년 출범하였으며 지역의 역량으로 세계와 소통하며 동시대적인 담론을 만들어 내는 제도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양성철은 1973년 사협 주최, 동아일보 후원의 전국신록촬영대회에서 <오월의 여상>으로 특상에 당선된 바 있으며 1974년 ‘대구사진연구회’에 입회하며 남해경에게 흑백사진 암실 작업을 배웠다고 한다. 이용환의 연구에 따르면 그의 인화 실력은 그야말로 최고였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 자신의 주장으로서 자신의 작풍(作風)은 어느 누구의 영향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에서 비롯되며 이를 ‘조형주의’로 부를 수 있다고 한다.(이용환 박사논문, 2019) 인용에서 드러나듯이 1970년대 사진의 모더니즘을 이끌어 간 양성철은 그 의식에 뚜렷하게 자리 잡은 자의식과 자신이 다루는 매체의 자율성을 깊이 인식한 모더니스트라 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양성철은 대구사진연구회 회원으로 공모전에 출품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갔다. 제14회 동아국제사진살롱에서 동상을 수상한 <환상>은 빅브라더와 같은 거대한 손에 억압받는 모습으로 제도와 타인이라는 감옥에서 고통받는 벌거벗은 자아상을 드러낸다. <환상>(1979)은 산업사회 도시의 인간군상이 시달리는 소외된 심리 구조를 표현하며 살롱사진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고통의 손짓으로서의 손과 억압의 손짓으로서의 손이 겹치면서, 다른 의미로 나열되는 중첩과 이탈의 형상이 매우 감각적이며, 청년 양성철의 역량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여기에 그의 조형주의가 감지되는 것이다. 후일 그의 (1988)에 드러난 ‘손의 개입’ 모티프는 1970년대 작품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당시 동아국제사진살롱에서 한국인이 수상할 수 있는 최고상이 동상이었다고 하니 <환상>은 의미있는 국내 최고 수상작이다. 양성철은 1979년 <잔상(殘像)>이라는 제목으로 제1회 개인전을 개최한다(대구 매일화랑). ‘잔상(After Images)’이 말해주듯 양성철 사진을 관통하는 영상, 그 이미지는 장면을 동요케 한다는 측면에서 ‘어떤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사실에 기반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사실을 빗나가며, 과녁 밖의 공간을 이미지로 불러내는 공(空)의 사태라 부를 만하다. 아직 의미가 결정되지 못하였기에 ‘공’이며, 통상의 기능을 막 벗어난 공간이기에 ‘공’이다. 사진 찍기를 통해 생산된 이 공간이 바로 양성철의 고유한 조형공간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 스스로가 말한 조형주의는 매우 적확한 표현이다.

 1970년대 비로소 등장한 사진의 모더니즘이 1980년대 얼마나 난만(爛漫)하게 전개되는지 그 단초를 보여주는 동인전이 등장한다. <제3사진그룹>이다. 김복만, 김영수, 양성철, 한정식, 홍순태가 속한 <제3사진그룹>의 변(辯)은 사진에 있어 모더니즘의 한 양상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제3그룹은 아무데도 속하지 않음을 뜻한다. 
 제3그룹은 아무런 경향을 지향함이 아님을 뜻한다.
 제3그룹은 자유와 창조, 그리고, 순수를 뜻할 뿐이다. 

 제3그룹은 개성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작업을 통하여 사진 자체만을 보여주기 위해 모였었다. 세 번만 함께 전시를 하고 자동 해체하기로 했었다. … ‘순수’는 제3그룹의 영원한 목숨이기 때문이다.
(제3사진그룹, 발행인 주명덕, 도서출판 시각, 1983)

이 선언 아래 동인 5명의 서명이 있다.

 대구현대사진운동을 이끌었던 양성철은 1980년대 목언사진연구소를 운영했다.(1982-1985) 카페 겸 전시장으로서, 전시장이면서 연구소이고 동시에 동시대 담론의 현장이었다. 이곳은 사진가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하며 미술관이 없던 시절 대외 교류의 장이 되었다. 이곳에서 전시한 작가들은 한정식, 이완교, 육명심, 주명덕, 임양환, 이용환, 이기원, 김영수, 이외 많은 젊은 작가들 등이었다고 한다. 작가들의 집결지이면서 당대 동시대적인 신선한 기류가 모이는 곳으로서, 3년여 만에 문을 닫은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사진에 있어 대구 내외 교류의 현장으로서 기여한 점은 기억되어야 한다. 양성철에 의하면 목언(目言) 시절, 카페에 사람들이 한 번 오면 가질 않으니 수익이 날 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사용된 ‘목언’ 자(字)를 풀이하자면 ‘눈의 언어’이다. 자연인의 보는 사람으로서, 카메라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으로서, 사진작가로서 이 모든 것을 ‘목언’이라는 이름에 함축한 것을 보면 이 이름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얼마만한 애정을 담아 작명을 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한자 目言을 마주하면 형태적으로 창문들이 모여 있어, 우리가 보고 또 보고 또 보는 것이 강조된다. 사실 양성철은 눈이 좋지 않다. 정상의 눈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신체로 인해 보는 것에 대한 예민한 관심, 보게 하는 도구로서의 사진, 사진 언어로서의 영상(image)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인지 모르겠다. 보는 것의 한계와 특이성은 몸의 문제를 넘어 그의 경향성에까지 영향을 끼쳐 그만의 보기 방식을 만들게 된 것이라 추정된다. 본다는 것과 달리 본다는 것, 다름과 다르지 않음의 경계 그리고 이와 관련된 조형공간의 생산은 양성철이 대상을 정확하게 마주하면서도 빗나가며 산출되는 이미지, 즉 ‘아직 아무 것도 아닌 이미지’로서 그것은 그의 몸, 신체로부터 그 내력을 찾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2. 양성철의 사진

 양성철 사진작업에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원천이 있다. 이 원천은 목언사진연구소를 운영하게 하는 동력과도 연결되지 않나 싶다. 북성로에 자택이 있던 양성철은 사대부국 등하교 길에 항상 지나던 곳이 있다. 오늘날의 백화점보다 더 신기했을 공간이라 상상되는데, 바로 미국공보원(USIS)이다. 대구역 인근에 있던 미국공보원은 당시 유일한 문화 공간으로, 각종 전시 및 행사의 중심공간이었다. 오며 가며 들른 미국공보원에서 양성철이 생전 처음 보는 전시와 처음 듣는 강연과 처음 보는 잡지들을 접하며 호기심으로 주워 담은 풍월이 컨템포러리 아트의 언어들이었던 것이다. 당시는 알 수 없었던 ‘컨템포라리’라는 말이 청각의 무늬로 떠다니다 대학 졸업 후가 되어서야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니, 초등학교 등하교길 참새처럼 들르던 미국공보원의 장면들은 이후 양성철 작업을 조타하는 자양분으로서의 원천이 아닐까 한다. 또 다른 원천은 양성철과 외국 서적들과의 만남이다. 교사이셨던 부모님 덕분에 양성철은 외국 잡지를 원하는 만큼 사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집현전과 삼영서림에서 단골로 수입한 잡지는 일어에 능통하신 어머니로부터 즉각 자동 번역되어 양성철 지식의 보고로 수렴되었고, 이를 통해 당대 첨단의 예술 분위기 및 사진작업 그리고 현대미술 전반에 대한 감각이 수용되었던 것이다. 책과의 만남에 하나 덧붙이자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와 저녁 카바이트 불빛에 늘어 선 각종 미국 잡지들도 양성철 감성의 주조(鑄造)에 주요 자원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현대적인 문화공간과 책, 이 두 가지로부터 수혈된 경험이 양성철의 창의적인 관점에 근본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원천이라 생각된다. 이것이 매뉴얼과 통념을 넘어서고자 하는 그의 개방성과 실험의 주요 동력이라 본다면, 양성철에게 영향을 준 요인이 외부의 요인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작가 자신의 말이 납득이 된다. 양성철이 보다 직접적으로 사진과 만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시절 사진부에 들면서부터이다. 당시 사진부를 이끌었던 정태영 선생께서 대구에서 개최된 제1회 한국국제사진전에서 입상뿐 아니라 시드니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수상하게 되어 학생들의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정태영 선생과의 만남에서 전문가로서의 길이 준비된 것으로 봐야겠다. 강상규는 1960년대 대구사단에서 활약한 대표 작가로 정태영을 언급하고 있다.

 
 
 ‘내가 하는 말이 사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침묵하겠다’는 양성철은 작업에서 침묵을 요구하는 이미지의 실험으로 일관한다. 시간을 흩트리고(<면목(面目)>), 기록을 훼손하며(<불이(不二)>), 브레히트처럼 공간을 단절시키면서() 양성철은 바로 그로부터 이미지 고유의 장소를 마련한다. <컷 인(Cut In)> 시리즈는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 초청받은 작품으로, 제시카 모건은 양성철이 초현실주의 언어를 도입한 것이라 평하며 기술적 차원을 넘어선 자유로운 실험의 경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양성철의 작업이 증인으로서의 장면이든, 지표로서 현실의 동요를 부추기든, 하나의 사건이든, 구성이든, 다큐멘터리의 진실이든 어느 경우이든 분명한 것은 양성철 작업은 ‘사진적인 어법으로, 사진만의 방식으로’ 사진의 조형공간을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성과 기록성에 근거해서 기록되지 않은 이미지를 확보한다고 할까. 이런 만큼 양성철에게 인물(人物)과 무기(無記) 작업은 ‘구체적인 표정을 지니는 것과 기록되지 않음’이 같은 차원에 존재하는 것임을 표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양성철 작품의 현대성이자 실험성이라 할 수 있다. 
 평원이나 고원, 심원 어느 시점에도 속하지 못하게 하는 앵글은 그의 고도한 숙련도를 엿보게 하고, <면목(面目)>에 흔들리는 사진이나, <불이(不二)>의 인위적인 단절, 인+물(<人物>)에서 드러나는 구체(具體)와 익명(匿名)의 등가성 등은 모두 양성철이 가고자 하는 새로운 분류의 세계이자 그 산물들이다. 이것들은 모두 현상의 우연적인 만남이지만 이를 관통하는 우주적인 시공간의 지속(持續) 속에 떠 있는 이미지들이다. 현상의 우연적인 만남은 돌부처가 각도에 따라 울고 웃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불상을 통해 그가 불러낸 이미지는 사실상 이 모든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볼 때, 양성철이 평생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전개한 실험의 내용은 바로 사진적인 이미지의 구원(救援)이 아닐까 한다. 사진의 존재론적인 특성으로부터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그는 기계에 통달하여 그 한계를 벗어나는 실험을 이어갔던 것이다. 양성철 작업은 근본적으로 분류를 새롭게 만드는데 도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양성철은 색 연작 ‘레드와 블루’에 천착하고 있다.(붉은 깃발 별이 되어(2019), Blue Hour(2022)) 이 작업은 감각을 통한 분류로서 ‘색’을 통해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묶어 그것이 에너지가 팽팽한 이미지가 되고, 지표가 되는 작업이다. 감각을 통해 실질을 다시 분류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내 이름은 빨강’과 비슷한 말이다. 실체가 없는 감각의 징표로 사물을 다시 명명하고자 하는 방식이 ‘레드와 블루’ 색 작업인 것이다. 흔한 이야기에 충성스럽고 감동적인 개의 설화가 있는가 하면 개와 같은 놈이라 하여 천하고 비루한 성정(性情)을 지시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개’ 기표가 담아내는 정반대의 정서와 이념은 붉은 색에 묶여 모순과 대립에서 한걸음 떨어지는 메타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레드 콤플렉스’도 있지만, ‘붉은 악마’도 있는 것처럼 분열과 모순을 포괄하는 양성철의 메타 이미지 레드에서는 기성의 의미가 중지되고 무엇인가가 다른 관점, 한 발 물러선 미적 거리 같은 잠재성이 꿈틀거린다. 이런 맥락에서 양성철의 색 연작은 ‘사진의 메타 이미지’연구라 하면 알맞을 것 같다. 메타 이미지 관점은 코로나를 경험한 우리 모두에게 삶의 지표가 되고 있다. 거대한 중지 후 드러나는 반성적 관점과 대전환에 대해 양성철의 카메라 눈은 메타 이미지로 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블루 작업에서 그 일면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양성철 梁誠哲 Yang Sung-Chul 

1947년 대구 출생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상학과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전공 

경력 
1982-1990목언사진연구소·목언출판사 대표 
1990-2007대구산업정보대학 사진영상과 교수 
1993영남사진학회 회장 
1998-2002 월간 포토하우스 편집주간 
2000-2004한국영상미디어협회 고문 
2002아시안 크로싱 대구 교토전 운영위원장 
2006-2012대구사진비엔날레 조직위원, 사무국장 
2016대구사진비엔날레조직위원회 운영위원장
2016 – 2020    대구미술관 작품수집심의위원

개인전 
1979잔상(殘像), 매일화랑(대구) 
1988CUT-IN, 파인힐갤러리(서울) 
CUT-IN, 태백화랑(대구) 
1992공상(空相), 동아미술관(대구) 
1996불이(不二), 시공갤러리(대구) 
1997불이(不二), COSMO갤러리(오사카, 일본) 
1998불이(不異), ISSISS갤러리(교토, 일본) 
1999불이(不異), 051갤러리(부산) 
2001인물(人物), 시공갤러리(대구) 
2003인물(人物), 고토갤러리(대구) 
2007무기(無記), 한미사진미술관(서울) 
2010신미인도(新美人圖), 아트스페이스방천(대구)
2014불상(佛相), 갤러리나우(서울)
2015CUT-IN, 포토스페이스방천(대구)
2019붉은 깃발 별이 되어, D갤러리(대구)
2021카메라에 손을 넣다(cut-in), PnC갤러리(대구)
2022   목언(目言), 대구문화예술회관 원로작가 회고전(대구) 

주요단체전 
1975-1981대구사진연구회 회원전(대구) 
1982현대사진 7인전(대백화랑, 대구) 
1983제3사진그룹 동인전(백상기념관, 서울) 
1986사진가 8인의 시각전(백상기념관, 서울) 
1988사진-내일을 향한 모색전(동아미술관, 대구) 
1991한국 흑백사진 초대전(시민회관미술관, 대전) 
1993'93 한국현대사진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1994한국현대사진의 흐름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한국사진의 현단계전(인데코화랑, 서울) 
1995우리사진 오늘의 정신전(인데코화랑, 서울) 
1996'사진은 사진이다'전(삼성포토갤러리, 서울) 
1997'97서울사진대전(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98사진, 그 정체성전(동아쇼핑 갤러리, 대구) 
2000인간과 자연의 재발견전(문화예술회관, 대구) 
2001대구현대미술의 시선전(문화예술회관, 대구) 
2002사진교류전「Aslan Crossing」교토전(교토예술센터, 일본) 
한국현대사진의 조망전(동강사진축전, 영월학생체육관) 
2003뉴프론티어전(문화예술회관, 대구) 
2005From Daegu-30년 메시지전(문화예술회관, 대구) 
2006견물생심전(대백프라자갤러리, 대구) 
2007대구시민회관기획 미디어아트전(시민회관, 대구) 
2008한국현대사진 60년전(국립현대미술관)
2009The AIPAD Photography Show(New York) 
2010노스탤지어(갤러리아트사간, 서울) 
2011현대사진의 풍경(스페이스 가창)
2012대구사진비엔날레 특별전 대구현대사진의 여명(대구문화예술회관) 
2013대구-상해 사진∙미술 교류전(대구문화예술회관) 
20142014광주비엔날레 초대(광주비엔날레 전시관) 
2017인물탐구전(D갤러리, 대구)
2018   프레임 이후의 프레임(대구미술관)

출판 
1980개인사진집 『잔상(殘像』 
1983그룹사진집 『제3사진그룹 동인집』(시각출판사) 
1986그룹사진집 『사람들』(열화당출판사) 
1988개인사진집 『CUT-IN』(목언출판사) 
2018개인사진집 『人+物』(눈빛출판사) 
2019개인사진집 『붉은 깃발 별이 되어』(모리디자인)
2021  개인사진집  “카메라에 손을 넣다”(ADgallery)
2022  개인사진집  “目言”(대구문화예술회관)

작품소장
예술의 전당, 동강사진마을

대표작품 이미지

2022-07-28 ~ 2022-08-13
대구 달서구 공원순환로 201 대구광역시문화예술회관
대구문화예술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