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훈 사진전 ‘타인 가족 시리즈3’ 곁을 내주다
타인 가족, 그 아름다운 관계에 대하여
이강훈 사진전 <곁을 내주다> 9월 20일부터 류가헌에서
눈에 밟히다 - 한때 산업역군으로 불렸으나 사우디에서 돌아와 건설노동자로, 서울역 노숙자로, 이제는 쪽방촌 사람으로 불리는 박씨는, 옆방 팔순 노인의 하루가 자꾸 눈에 밟혔다. 거동이 불편하여 끼니조차 챙기지 못하는 그를 위해 각자이던 밥상을 하나로 합쳤다. 가정을 이루어 본 적 없이 오래 혼자였던 두 사람에게는 서로의 숨소리도 위안이었다.
타인에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로, 그리고 이제는 돈의동 쪽방촌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두 남자의 나날을, 사진가 이강훈은 일 년 넘게 곁에 없는 듯 맴돌며 사진에 담았다. 한번 본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 사진들이 2011년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사진가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사진가로서 이강훈의 이름과 ‘타인 가족’의 개념을 주목케 했다.
서로 기대다 - 성수동 골목 반지하에 사는 임할머니와 이할아버지. 각자 곡절 끝에 만나 ‘남은 생을 서로 의지하며 살자’고,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없이 달동네 작은 방들을 옮겨 다니며 함께 산 세월이 40년이다. 없는 것 투성이의 삶이지만, 그래도 이들에게는 ‘서로’가 있다. 함께 사는 이가 있으니 기초생할수급 대상에도 못들지만, 그래도 서로를 포기할 수는 없다.
<서로 기대다>는 이강훈이 <눈에 밟히다> 이후 4년 만에 내보인 ‘타인 가족’ 두 번째 시리즈다. 서로를 지켜주며 살아가는 두 노인의 초상을 통해, 우리 삶에서 ‘서로’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되뇌게 했다.
이후로도 일차적인 형태로서의 가족이 아닌, 사회적 인연의 테두리에서 만난 다른 형태의 가족관계들을 살피는 사진가의 시선은 계속되었고, 이제 7년 여 만에 그 결실이 전시로 선보여진다. 9월 20일부터 류가헌에서 열리는 이강훈 사진전 <곁을 내주다>이다.
곁은 내주다 - 전라북도 순창에 귀촌한 젊은 농부 한재희 씨와 그의 아내는 서로에게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에게도 자신들의 ‘곁을 내어주고’ 함께 살아간다. 재희 씨는 어르신들 부탁을 쫓아다니느라 본인 농사일은 뒷전이기 일쑤다. 명자 씨 또한 매일 새벽부터 저녁나절까지 이어지는 식당 일에 숨 가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강훈의 눈에, 살갑고 바지런한 부부를 중심으로 마을 전체가 하나의 가족 공동체처럼 살아가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소중했다. 다섯 해 동안 숱하게 순창을 오가며 조용히 그들의 삶을 응시하고 사진으로 옮겼다. 사진가 임종진이 “사람과 사람이 관계로 성장해가는 마을 전체의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한 그 모습들이, 총 50여 점의 전시작으로 추려져 관람객들 맞는다.
‘눈에 밟히다’ ‘서로 기대다’ ‘곁을 내주다’. 전시 제목들은 두 단어가 합쳐져 새로운 비유로 확장된 관용어들이다. 작가는 전시 제목처럼, 타인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관계를 통해 ‘눈에 밟히고, 서로 기대고 곁을 내주는’ 삶의 가치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강훈 Lee, kang hoon
이강훈은 ‘타인 가족’ 시리즈로 사진을 해나가고 있다. 타인이면서 가족처럼 사는 쪽방촌 두 남자의 삶을 이 년여 동안 곁에 머물며 담은 사진으로 개인전 <눈에 밟히다>를, 그리고 작은 방들이 점점이 박힌 성수동 어느 깊숙한 골목 반지하에 사는 두 노인의 삶을 <서로 기대다>란 전시 제목으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여전히 일차적인 형태로서의 가족이 아닌, 사회적 인연의 테두리에서 만난 다른 형태의 가족관계들을 살피는 것에 시선을 두고 있다.
2010 한겨레신문 주관 ‘2011 한겨레 포토 워크샵 어워드 대상(올해의 사진가) 수상
2011 ’눈에 밟히다‘ 개인전
2011 여성가족부 – 여성사전시관 기획전 ’다시 날다‘
2012~2015 성동 근로자 복지센터 사진강사
2015 ’서로 기대다‘ 개인전
2015 루나 포토 페스티벌 단체전
2015~2017 국가인권위 발행 월간 ’인권‘ 사진 기고
2018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진강사
2019 너나들이 프로젝트(한빛 맹아원) 사진강사
2019~ 디딤돌 문화교실(남대문, 창신동 쪽방촌) 사진강사
- 현대 엔지니어링*서울시
둘 사이 그리고 우리 사이
“아짐드을~! 새참 잡수고들 하셔어!”
한 시골 아낙이 새참 가득 채운 광주리를 들고 먼발치서부터 큰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메아리처럼 들뜨는 소리에 정이 가득하다. 드넓은 매실나무밭에서 분주히 손을 놀리며 가을걷이를 하고 있던 ‘아짐’ 아닌 할머니들이 고개를 들어 화답을 한다.
“아따! 벌써 시간이 글케 됭겨어? 쪼매만 더 따고이.”
할머니들은 그새 새참 때가 되었느냐며 배시시 반기면서도 손길을 거둘 줄을 모른다. 안달이 난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할머니들과 함께 내내 매실따기에 매달리던 이 자리의 유일한 남성이다. 그는 짧은 머리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천상 시골 농부 그 자체다.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시골 농부가 잔소리하듯 할머니들을 재촉한다. 그 모습이 실제 모친을 대하듯 애교가 넘친다.
“아이고오! 어여 오셔서 한숟가락들 뜨시장게요오! 나도 배고푸요오!”
종일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도 피할 겸 뱃속도 채울 겸 그제서야 동네 할머니들이 굼뜬 걸음으로 그늘 속으로 몸을 내린다. 이미 자리를 잡아놓은 채 시골농부와 손을 나누며 새참꺼리들을 펼쳐놓았던 젊은 아낙이 시골농부를 향해 훠이훠이 손짓을 했다. 잔소리 그만하고 당신도 얼른 앉으라는 채근이다. 기세등등하던 시골농부는 금새 꼬리를 내리고는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 할머니들의 밥그릇에 새참들을 얹어드리기 시작한다. 아낙과 농부 둘 사이에 흐르는 기운이 달달하면서도 정겹다. 직접 새참을 만들어 밭으로 들고 온 시골아낙은 특유의 생글거리는 미소로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든다. 시골농부보다 더 진한 사투리가 일품이다.
“오메야! 여기 땀 흘리는 것 좀 보소. 여기 시원한 물부터 먼저 드시고 숟가락 뜨쇼이!”
할머니들도 웃고 농부도 아낙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마치 평생토록 둥지를 이루어 살아온 한 가족마냥 그저 보기 좋기만 하다. 가만히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 내 시선이 두루 머문다. 제대로 묵혀 익은 손맛 품은 된장 향기가 절로 느껴질 정도다. 할머니들이 구성진 댓거리들을 대하는 상대적으로 젊은 농부와 아낙의 화답을 보면서 그렇게 내 몸이 사르르 달아오른다. 이 느낌이 더없이 좋다.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에 사는 농부 한재희 씨와 아내 방명자 씨. 올해 19년 차 부부 사이인 그 두 사람이 틔워 올리는 기운은 가을하늘처럼 늘 더없이 맑고 평화롭다. 나와 그들 부부 사이에 흐르는 인연도 그만큼 따사롭기 그지없다. 어느새 내게 선물처럼 다가온 두 사람이다. 햇수로 5년을 넘게 내 터전과는 한참 떨어진 시골 현포리를 그리고 이 부부를 고향 친구 찾아가듯 접하고 만나왔다. 계절이 수없이 바뀌는 동안 농번기와 농한기의 다른 듯 같은 두 사람의 삶을 알게 되었고 현포리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정을 덤으로 얻기도 했다. 얻어먹은 끼니의 햇수는 가늠조차 어렵다.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두 부부는 동네 사람들 챙기는 일로 늘 바쁘다. 아내 명자 씨는 맛좋기로 소문난 식당을 운영하고 남편 재희 씨는 벼농사 밭농사를 가리지 않는 농부이자 동네 이장이기도 하다. 먹고사는 일에 바쁜 뻔한 시골살이에도 이들의 손길은 동네 이웃들을 향해 항상 열려있다. 구수한 남도 사투리를 정감있게 구사하는 두 사람은 원래 현포리 사람들이 아니다. 오랜 연인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경기도 시흥에서 살림을 이루다가 지난 2010년 순창에 정착한, 아직은 반(半)시골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주민들과 나누는 그들의 일상은 애초부터 한 고향 사람인 듯 정겹기만 하다.
12년 전 처음 현포리에 들어와 머뭇거리던 즈음, 이곳 동네 어르신들의 손길이 지금의 안정적인 삶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농사가 뭔지도 모르던 재희 씨는 이제 하늘과 별의 움직임까지 읽어 땅을 살리는 농부가 되었고 살림밖에 모르던 명자 씨는 솜씨 좋은 요리사가 다 되었다. 그렇게 익숙해진 자신의 솜씨 모두를 기꺼이 내어주기를 아끼지 않는다. 이들 부부를 제 자식인 양 대하는 동네 어르신들도 마찬가지다. 일손을 나누는 일도 동네일을 부탁하는 일도 스스럼이 없다. 농번기를 벗어나면 재희 씨는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버스를 대절해 나들이를 가기도 하고 명자 씨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집으로 밥을 지어 나른다. 그렇게 두 부부는 일년 사시사철 동네일에 관여하고 어르신들의 건강이 상하지 않나 살피기를 반복한다.
5년 전, 순창에 귀농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이들 부부와 인연을 맺었다. 수차례 그곳을 드나들면서 두터운 정을 나누는 두 부부의 마음 씀씀이가 유난히 눈에 밟혔다. 재희 씨는 어르신들 부탁을 쫓아다니느라 본인 일은 뒷전이기 일쑤다. 명자 씨 또한 매일 새벽부터 저녁나절까지 이어지는 식당 일에 숨가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언뜻 쉴틈없이 지내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한데 오히려 그들의 얼굴에 드리운 환한 미소는 그 염려를 내려놓게 만든다.
곁을 내어주고 살아간다는 것은 때론 버거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곁을 내어주는 일을 그리고 곁을 함께 이루는 일을 자신의 일상으로 여긴지 오래다. 시골살이에서 곁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기에 인색할 일이 아니라고 두 부부는 말한다. 손님이었던 나조차 그 곁이 좋아 수시로 현포리를 찾아 그 기운을 몸에 두르는 시간을 수도 없이 채워왔다. 아마도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 바로 ‘곁’의 결을 찾는 것이며, 그것을 이 두 부부에게서 온전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래도록 타인의 관계에서 세상 둘도 없는 가족이 된 사람들에게 시선을 모아 왔다.
부랑인처럼 살다가 부자(父子)의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돌보던 서울 돈의동 쪽방촌의 두 어르신들이 그랬고, 각자의 곡절 끝에 만나 혼인신고도 없이 40년을 함께 살아온 성수동 반지하의 또 다른 두 어르신들이 그랬다. 곁의 결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으니 기쁘기도 했으나 때론 조용히 숨을 죽이기도 했다. 아마도 조금은 아파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가난이, 그들의 현실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벽처럼 여겨졌기에 한동안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7년이 흘러 다시 카메라를 들 수 있었던 동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묻어두고 싶었던 내 작은 아픔을 이들 부부의 삶이 다독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두 부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바로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전히 현포리를 찾아갈 생각이다. 아직도 보아야 할 것이 많고 풀어내고픈 이야기들이 넘치는 탓이다. 두 부부가 내어준 감동적인 일상은 현포리 도처에 두루 퍼져 있고 그래서 곁을 이루는 이들의 그 ‘결’을 시간을 두어 다시 전하고 싶다. 또한 조금 더 이들이 이루는 삶의 향기를 더 누리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가 이강훈
이강훈이라는 사람의 향기
항상 누군가의 곁에 서 있는 사람. 곁에서 그가 하는 일은 주로 듣는 일이다. 명색이 사진작가이면서도 셔터를 누르는 행위보다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서 함께 앉아있거나 서 있는 행위를 우선한다. 그 기간이 아주 길다. 이때다 싶어 셔터를 눌러야 할 순간이 당연히 몇 번이나 펼쳐지겠지만 그의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는다. 때론 지독하다 싶을 정도다. 느려도 어지간히 늦다. 다른 이들 같으면 애가 탈 법도 한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천하의 태평스런 얼굴로 그 누군가의 곁에 서 있다. 왜 그러고 서 있느냐고 누가 물을 때마다 그의 답은 한결같다. “저는 그게 좋더라구요.”
사진가 이강훈은 그런 사람이다. 그의 면면을 더 이어 설명하자면, 작업의 결과물로서의 사진보다는 한참을 살피면서 자신의 눈과 귀를 기울이는 과정 그 자체를 더 애정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진심이 그러하기에 ‘애정’이라는 표현이 과하지가 않다. ‘그 누군가’는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 둘 또는 여럿이 그의 애정 대상이자 곁의 실체이다. 홀로 고독을 품은 방랑을 하거나 방구석에 드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일은 그에게 거의 없다. 이렇듯 본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성정 상 그리고 오래도록 이강훈을 지켜봐 온 내 생각에도 확실히 관계나 인연에 매달리면서 그 ‘결’을 살피는 것에 그는 진심이다. 사진가로서 그는 특히 두 사람이 마치 한 사람처럼 가족 공동체와 같은 깊은 ‘사이’를 이루는 이들의 삶에 주목해 왔다. 대상으로 삼은 이들의 곁을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 시간의 바다에 둥둥 떠다니다가 함께 울거나 웃는다. 그게 좋다는 것이다. 종종 내게 와서 코를 훌쩍거리다 가곤 했는데 며칠 뒤면 어김없이 다시 그들 곁에 다녀왔다며 말갛게 웃는 일도 여러 번이다.
굳이 말하자면 이 모든 행위가 이강훈이 가진 특유의 작업 방식이다. 귀 기울여 듣고 깊이 살피듯 바라보며 기어이 손까지 내밀어 어루만지고야 마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사진적 행위인 것이다. 자신의 행위와 그에 따른 결과가 합체된 형태로 세상에 나오는 이강훈만의 사진은 그래서 늦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사진을 업으로 삼아왔다고 말하는 지난 십수 년 동안 그는 ‘겨우’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 두 전시의 내용과 주제가 모두 서로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나누는 혈육 관계 이상의 인연에 대한 것이다. 표상화된 이미지로 갤러리를 장식했으나 그 두 전시를 통해 이강훈이 전하려는 것은 그의 말마따나 결국 곁의 ‘결’에 대한 자신의 소회이면서 행복한 삶에 대한 염원이다. .
지난 2011년 8월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린 첫 사진전 <눈에 밟히다>와 4년 후 2015년 9월 같은 공간에서 열린 두 번째 사진전 <서로 기대다>는 이강훈만의 사진적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전시였다. 첫 번째 전시의 주인공은 서울 돈의동의 작은 쪽방에 함께 살고있는 노숙인 출신 두 늙은 남성이고 두 번째 전시의 주인공은 서울 성수동에서 혼인신고 없이 부부의 연으로 살아가는 차상위계층의 두 늙은 남녀들이다. 이강훈은 두 전시를 각각 열기 수년 전부터 돈의동과 성수동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두 전시의 주인공 네 사람은 노숙인 출신이라는 불온한 사회적 낙인 속에 살아가거나 지독히도 가난한 이들이라는 다른 듯 같은 낙인을 천형처럼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아름다운 동행을 이루는 이들이었으며 남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는 다르게 누구못지 않은 인연의 깊이를 채워가는 이웃이자 귀한 시민들이었다(고 이강훈은 말한다). 이강훈은 이 삶의 풍경을 가슴 속에 담아 세상에 남김으로써 자신에게 사진의 의미를 확인시키는 기회로 삼았다. 사람 사이의 곁에 선다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두 사람 스스로도 모르는 복잡 미묘한 감성의 선을 재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감성, 그것도 무시로 변하는, 자신도 파악할 수 없는, 그 무(無)본질의 현란한 변화의 세계를 단편적이고 순간적이고 탈맥락적인 사진으로 재현할 수는 있을까? 인간이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행하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세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애매한 메타 감정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기는 하는 것일까?’ - <서로 기대다>전시에 부쳐/사진비평가.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
2015년 <서로 기대다> 전시 추천사를 쓴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는 미리 당시 전시작품들을 일일이 읽고 분석한 뒤 이강훈에게서 이 의제의 실현 가능성을 포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꾸준히 그 걸음을 이루어가기를 바라는 기대감과 함께 이 교수는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세상, 보이되 보이지 않는 그 사람들도 함께 사는 세상’에 ‘이강훈이 서 있다’면서 그렇게 함께 살아가자는 당부의 전언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긴 시간이 흐른 지금 이강훈은 세 번째 사진전 <곁을 내주다>를 준비했다. 이광수교수의 기대와 당부에 걸맞는 농익은 결과물로 준비했는지는 이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두루 살펴주시기를 바란다.
이강훈은 지난 5년여의 시간을 가득가득 채워 남도땅 순창의 작은 시골마을을 오고 갔다. 무엇이 어느 누구들이 있기에 이강훈은 그 긴 시간을 아낌없이 쌓아왔을까. 예의 그가 추구했던 사진적행위와 그에 따른 소중한 부산물들을 펼쳐놓던 이강훈식 한상차림이 이번에도 이어지는 것일까. 이강훈은 이번 전시를 열면서 자신의 작업노트에 ‘곁의 결’이라는 표현을 썼다. 합쳐 십여 년을 훌쩍 넘도록 사람 사이의 곁에 머물면서 아마도 그는 곁의 결이 자신에게 여전한 의미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으로 우선 보인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5년의 시간 동안 두 사람의 ‘사이’에 다시 주목하면서 그 주목성을 자기자신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고 고단한 이들의 처연하지만 처연스럽게 보여지지 않기를 바라던, 숨겨뒀던 내면의 소망에서 일탈해 ‘단편적이고 순간적이며 탈맥락적인 사진의 재현’이라는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그는 오히려 자기자신에게서 찾은 듯 보이기도 한다.
남도땅 순창의 소박한 시골마을에서 이강훈은 이전과는 달리 실제 부부인 명자 씨와 재희 씨를 만나 다시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내놓는 소리와 몸짓에 주목해 왔다. 이강훈은 그 기간이 두 사람 사이에 집중했던 원래의 시선에서 벗어나 두 사람이 다른 여러 사람들(동네 어르신)과 이루어가는 행복한 공동체의 형상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는 소망이나 바람이 아니라 그 기대의 완성된 실체를 마주하는 시간들이었다는 뜻이리라. 이전 작업의 과정에서 느꼈던 알수없는 내면의 벽을 그는 아픔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아마도 자신의 감흥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빈곤의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것이 자신의 작은 상처였다는 것이다. 이 전시에서 이강훈은 현포리에서 마주한 곁의 결을 자신의 내적 상처까지 살피는 자리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동안 보여왔던 자신의 시선과 사진적 방식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선’을 구현하는 행위로 수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고백하듯 말하고 펼쳐놓는다.
사진전 <곁을 내주다>는 두 사람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이강훈의 시선에 대한 마지막 전시이며 향후 이강훈의 사진적 확장과 성장에 대한 또다른 시도의 빌미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하여 이 전시는 끝을 맺음으로서 전하는 사진전이 아니다. 그는 다시 신발끈을 고쳐매고 현포리를 찾아갈 것이고 두 사람이라는 특정한 관계성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관계로 성장해가는 마을 전체의 아름다운 동행을 그들의 곁에서 지켜보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이루는 삶의 향기를 그는 더 오래도록 음미할 작정으로 보인다. 그 모든 것을 품은 이야기들이 성큼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사진치유자 / 임종진

#1 곁을 내주다

#2 곁을 내주다

#3 곁을 내주다

#4 곁을 내주다

#5 곁을 내주다
2022-09-20 ~ 2022-10-02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113-3(자하문로 106)
류가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