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국내 사진전

<야이덜, 이제 어떵들 살암싱고예?>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瀛 개관기념 고영일 사진전

야이덜, 이제 어떵들 살암싱고예?
-고영일이 만난 1950-80년대 제주아이들
(이 아이들, 지금 어떻게들 살고 있을까요?)

전시일시: 2021년 4월 20일(화)~6월 20일(일), 정오12시~오후 6시
전시장소: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瀛(제주시 만덕로 11번지 2, 3층) 전    화: 070-4246-5504
전시담당: 고경대(010-8007-5504)
* 큰바다영瀛은 정오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하고 무료입장입니다. 

큰바다영 공간 개관 취지
-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瀛은 아버지 고영일 제주사진가를 기리기 위해 그 가족들이 만든 사진전시 공간입니다.
-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瀛의 개관을 기념하는 첫 전시를 고영일의 1950~80년대 사진 중 제주 아이들 사진으로 골랐습니다.
- 앞으로 이 공간에서는 ‘고영일이 만난 제주 사람들’을 시리즈로 전시를 하고자 합니다. 이번에 하는 ‘제주 아이들’을 시작으로, 1950-80년대 제주의 여자삼춘들, 남자삼춘들 사진 전시가 이어질 것입니다. 
- 이 공간은  제주사진의 과제를 “제주도의 자연과 생활과 인물과…”로 설정했던 제주 사진가 고영일 님의 생각을 담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고영일 님뿐 아니라 ‘사라져가는 제주도’ 모습을 담는 작업을 하는(했던) 제주 사진가들의 “개성 있는 향토색 ‘제주 재발견’ 작업”을 발굴, 전시, 공유해서, 누구나 제주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개관 기념 전시 소개
야이덜, 이제 어떵들 살암싱고예? 
-고영일이 만난 1950-80년대 제주아이들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瀛이 개관하면서 하는 첫 전시에서는, 제주 사진가 고영일의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작업한 사진 중 제주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2개월 동안 하는 첫 전시는 고영일의 제주아이들 사진 중 우선 43점으로 구성했습니다. 이어서 2차, 3차 아이들 사진도 전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시사진 중에는 고영일의 1950년대 사진도 있습니다. 1978년에 집이 불타서 당신이 1950년대에 신성여고 교사 시절 학교 암실에서 작업한 필름들을 거의 소실했습니다만, 다행히 남아있던 1950년대 아이들 사진을 이번에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전시를 준비하면서 고영일 님이 직접 인화하고 준비한 사진 4점, 1996년 전시한 사진 중 액자상태 그대로 4점 등도 이번에 같이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 사진들은 작가가 필름을 직업 인화한 사진이라 작가의 의도 등을 엿볼 수 있고 1980년대 90년대 당시 전시하는 분위기도 볼 수 있습니다.
전시한 사진들은 아이들이 카메라를 인식하여 포즈를 취한 것도 있지만, 길가에서 바다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놀거나 뭔가를 하는 모습도 많습니다.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자연 표정들도 보실 수 있습니다.
놀라운 일은 고영일 님이 사진으로 담은 이 아이들이 나중에 만날 수도 있을 것을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다음은 한 사진에 쓴 고영일 님의 사진 메모 글입니다. 그래서 고영일 님께. 또 여러분께 묻는 방식으로 전시 제목도 정하게 되었습니다. 
“야이덜, 이제 어떵들 살암싱고예?”

사수동에서 개구쟁이들(1969년)
동네에 들어서면 촬영자가 오히려 구경거리다. 몰려다니며 찍어달랜다. 다 모아놓고 막상 찍으려면 오히려 숨는 녀석이 있다. 장년이 되었을 이들 중에 몇이나 이 사진을 반길 형편이 되었을까?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瀛에서 처음 1950-80년대 제주 아이들 사진을 전시하는 것은, 전시 사진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50-80대의 제주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그 주인공들과 다시 만나고자 하는 뜻도 있습니다. 그때 그 아이들을 만나서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고 급격하게 변한 제주에서의 삶의 노정을 듣고 싶습니다. 그것이 또 하나의 살아있는 제주 현대사 기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1950-80년대의 제주 아이들에게는 제주의 산과 바다가 그저 일터이고 놀이터였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서로 어울리면서 뒹구는 아이들의 모습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게 된 성장과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그 모습을,  그런 세월을 겪은 이들뿐 아니라, 급격한 변화로 집안과 밖이 철저하게 구분된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도 보기를 권해봅니다. 
이후에도 “고영일이 만난 제주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이어서 1950-80년대의  제주 아이들 전시를 더 하고 또 내년에는 제주 여성, 남성을 담은 사진도 전시할 예정입니다.

제주 사진가 고영일 소개
리석 고영일 利石 高瀛一 Koh Young-il (1926~2009)
제주 출생
목포상업, 혜화전문 문학과, 서울신문학원 전수과
신성여고 교사, 제주신보 편집국장, 해병대 종군보도반원,
제주문화방송 총무부장, 제주와이즈맨 초대회장, 대동산업 대표

제주카메라클럽 창립회원 및 고문,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
한국창작사진가협회 감사, 제주도미전 초대작가, 경기도미전 초대작가
제주도 문화상 수상(1990년)

(저서) 카메라교실 기초편, 응용편, 인상사진의 이론과 실제
사진촬영의 이론과 실제, 포토클리닉(사진에 관한 Q&A), 
사진평론집 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 제주언론의 선비논객 고영일(이문교 엮음)
(사진집) 60년대의 제주도, 고영일이 본 제주의 속살
(전시) 1955, 56, 63년 개인전, 1989년 초대전(탐라목석원), 1996년 초대전(제주카메라클럽), 1997년 서울 코닥살롱 개인전, 2011 고영일 2주기 추모사진전(돌문화공원)
고영일의 사진에 대한 생각
…… 루마니아 태생인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씨가 제주도 방문의 첫인상을 묻는 나의 질문에 대하여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무덤을 가지고 조상과 더불어 살고 있는 곳”이라고 말해주던 1974년의 기억이 떠오른다. 
유별나게 훌륭한 조상의 유택을 지키고 사는 모습에서 제주도의 봉쇄성 때문에 남겨진 근대화 이전의 민속적 분위기를 그가 느낀 때문이었음을 그 당시에는 이해했으면서도 “이렇게 독특한 향토색이 곧 이 고장의 개성이다”라고 덧붙여 주었던 그의 부연敷衍을 소홀히 들어 넘겼음을, 고희를 넘기면서야 후회하게 되었다. “가장 독특한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유행어를 상기하면서.
…… 이런 나의 후회는 …… 나의 수천 장의 원판 중에서 골라진 사진을 보면서 제주도적인 사진을 왜 좀 더 체계적으로 남기고자 하지 못했었을까 뉘우치는 것이다.
…… 그런대로 “내가 본 그때의 제주도적인 현실”을 박물관 구석에나마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시없는 보람으로 생각하겠다. 
-고영일, 『60년대의 제주도』 사진집에서(1997년)

-이 전시를 위해 쓰신 고광민 선생의 글을 첨부합니다.

‘사라져가는 제주도’는 사라지지 않았다
고광민 서민생활사 연구자

나로 하여금 카메라를 놓지 못하게 하는 마음은 이른바 ‘개발’ 때문에 사라져 가버리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다. 사실 사진인 치고 촬영지로서의 제주도를 한 번이나마 생각 안 해본 적이 없으리라. 거기서 자연 풍경으로서의 제주도는 언제까지나 이어줄 것이지만, ‘사라져가는 제주도’는 바로 지금부터가 가장 이른 출발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서 비로소 변방의 역사 현장으로서의 흔적이 그 고장 특유의 삶으로서 기록되어 지고는 마침내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고영일(1926. 11. 25∼2009. 3. 25)의 『60년대의 제주도』(탐라목석원 출판) 사진집 서문의 내용이다. 고영일의 ‘사라져가는 제주도’는 바로 지금부터가 가장 이른 출발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불철주야, ‘사라져가는 제주도’ 실상(實相)을 사진으로 남기는 삶을 살았다. ‘사라져가는 제주도’의 ‘지금’은 1960년대였다. 이때 제주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1968년 9월 21일, 제주도에서 최초로 경운기 기술교육 수료식이 있었다. 이 수료식 행사는 소[牛] 대신 경운기로 밭을 가는 시대의 출발점이었다. 이제부터 제주도는 소가 필요 없는 시대에 접어들었으니, 소의 월동 사료를 마련하였던 ‘촐왓’도 필요 없게 되었다. 1970년에는 생활환경 개선과 소득증대를 위하여 「새마을운동」이 일어났다. ‘생활환경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새’(띠)를 덮었던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슬레이트를 덮어나갔다. 서서히 초가지붕을 이는 재료를 마련하였던 ‘새왓’도 필요 없게 되었다. ‘촐왓’과 ‘새왓’을 경운기나 트랙터로 갈아엎어 밀감나무를 심어나갔다. 자본가들은 이런 밭을 사들여 골프장을 만들었다. 1970년 3월 24일,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한라산에서는 마소 방목도 금지하였다.
‘사라져가는 제주도’ 이전 시대, 제주도 백성들은 산에서 밭에서 바다에서 마을에서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마련하였다. 원초적인 경제 사회 시대였다. 그 시대 제주도 아이들은 제주도 백성들의 생업공간인 산과 밭과 바다와 마을에서 놀고, 일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웠다. 고영일은 그 시대 아이들의 실상도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성산일출봉 서쪽 ‘광치기’ 들판은 소들이 풀을 뜯던 곳이었다. 겨울에 성산리 소들은 성산일출봉 분화구로 들어가 월동하였다. 소들이 떠난 ‘광치기’ 들판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제주도는 논이 귀한 섬이라 육지 사람들처럼 논에서 생산한 볏짚으로 지붕을 이을 수 없었으니, ‘새왓’에서 생산한 ‘새’(띠)로 지붕을 이었다. 봄이 오면 ‘새왓’마다 ‘새’의 어린 꽃이삭이 피었다. 이를 ‘삥이’라고 하였다. ‘삥이’는 아이들의 간식거리임과 동시에 ‘삥이치기’의 놀이 도구가 되어주었다. 
제주도 갯가는 화산섬답게 돌이 많았다. ‘빌레’(너럭바위)와 돌멩이에는 바다풀이 무성하였고, 봄이 되면 바다풀을 먹고 자라는 ‘보말’(고둥), ‘구젱이’(소라) 등이 몰려들었다. 서귀항 갯가에는 아이들도 저마다 ‘구덕’(바구니)을 들고 갯가로 몰려들었다. 
제주도 화산섬의 빗물은 땅속으로 들어갔다가 갯가에 이르러 솟구쳤다. 용출수를 중심으로 하여 마을이 들어섰다. 용출수는 먹는 물과 함께 빨래하는 물이 되어주었다. 김녕리(구좌읍) 용출수 빨래터에는 어른도 아이도 모여들었다. 그리고 밤에 제주도 해안경비의 구실로 세운 초소에는 긴장이 감돌았겠지만, 경비원들이 떠난 초소는 아이들의 병정놀이 터전이 되어주었다. 원초 경제 사회 시대 제주도 아이들을, 「사진예술공간 큰바다 영(瀛)」에서 『야이덜 이제 어떵들 살암싱고? -고영일이 만난 1950∼80년대 제주 아이들』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고영일은 일제강점기 때 지금의 목포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이때 한 장씩 말린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고, 밤에는 하숙방 사진 현상실에서 사진을 만들었다. 그 당시 제주도 자제(子弟)가 타향에서 유학한다는 것은 꿈 같은 일이었다. 아버지는 고영일에게 카메라와 필름을 사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영일은 ‘사라져가는 제주도’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고영일의 장녀 고경심은 제주시 건입동 복신미륵(제주민속자료1호) 동산 큰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진예술공간 큰바다 영(瀛)」을 세웠다. 3대의 공덕(公德)으로 탄생한 이곳은, ‘사라져가는 제주도’ 역사를 사진으로 만날 수 있을 공간의 동산이 되었다. 「사진예술공간 큰바다 영(瀛)」은 ‘사라져가는 제주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발굴하고, 전시하고, 연구하게 될 것이다. 제주도 고영일 집안 3대에 걸친 공덕 앞에 고개 숙이고, 또 박수를 보낸다. ‘사라져가는 제주도’는, 이제 사라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1962년 제주시 막은골


삥이치기(1970년대 추정)
제주도는 논이 귀한 섬이라 육지 사람들처럼 논에서 생산한 볏짚으로 지붕을 이을 수 없었으니, ‘새왓’에서 생산한 ‘새’(띠)로 지붕을 이었다. 봄이 오면 ‘새왓’마다 ‘새’의 어린 꽃이삭이 피었다. 이를 ‘삥이’라고 하였다. ‘삥이’는 아이들의 간식거리임과 동시에 ‘삥이치기’의 놀이 도구가 되어주었다.(고광민 글)


서귀항에서(1965년)
제주도 갯가는 화산섬답게 돌이 많았다. ‘빌레’(너럭바위)와 돌멩이에는 바다풀이 무성하였고, 봄이 되면 바다풀을 먹고 자라는 ‘보말’(고둥), ‘구젱이’(소라) 등이 몰려들었다. 서귀항 갯가에는 아이들도 저마다 ‘구덕’(바구니)을 들고 갯가로 몰려들었다. (고광민 글)


김녕리에서(1979년)
제주도 화산섬의 빗물은 땅속으로 들어갔다가 갯가에 이르러 솟구쳤다. 용출수를 중심으로 하여 마을이 들어섰다. 용출수는 먹는 물과 함께 빨래하는 물이 되어주었다. 김녕리(구좌읍) 용출수 빨래터에는 어른도 아이도 모여들었다. (고광민 글)


해안초소에서(1980년대 추정)
밤에 제주도 해안경비의 구실로 세운 초소에는 긴장이 감돌았겠지만, 경비원들이 떠난 초소는 아이들의 병정놀이 터전이 되어주었다. (고광민 글)


사수동에서 개구쟁이들(1969년)
동네에 들어서면 촬영자가 오히려 구경거리다. 몰려다니며 찍어달랜다. 다 모아놓고 막상 찍으려면 오히려 숨는 녀석이 있다. 장년이 되었을 이들 중에 몇이나 이 사진을 반길 형편이 되었을까? 
(고영일 글)

2021-04-20 ~ 2021-06-20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만덕로 11번지 2 3층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瀛